15 Jan

지금까지 중국의 기독교 역사와 곳곳에서 복음을 전하신 선교사님들이 발자취를 살펴보았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생활방식과 빠른 사회 변화로 전략적으로 선교를 하려는 움직임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리하여 '아는만큼보이는중국'은 향후 어떠한 방식으로 선교를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몇 가지 선교의 전략들을 탐구하였다.




토착화 선교 vs 상황화 선교


  토착화 선교가 좋은지, 상황화 선교가 좋은지에 대한 대답은 각자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만 좋다고 말할 수 없다. 토착화와 상황화는 각기 다른 환경에서 태동했기 때문에 목적과 방향이 다르다. 이제 한국교회는 토착화와 상황화의 장단점을 잘 분석해서 21세기에 어떤 선교를 지향해야 할 것인지 길을 찾아야 한다.


1. 토착화 선교

1) 발생

  토착화 선교는 19세기에 등장하였다. 당시 선교는 서구교회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이 때 놀라운 발상의 전환으로 ‘전달자'(선교사)가 아닌 ‘수신자'(현지인) 중심의 선교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런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헨리 벤과 루퍼스 앤더슨이다. 벤은 영국교회의 아프리카 선교가 기대보다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가 ‘선교 기지'에 있음을 발견하였다. 아프리카에서 교회, 병원, 학교에 영어를 잘하는 현지인을 고용해 일을 시키다보니 생활도 편할 뿐 아니라 사역하기에도 안성 맞춤이었다. 영국 선교사들은 영국 생활을 아프리카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것과 같은 환경에서 사역을 한 것이다. 벤의 생각으로 이런 곳에서는 현지인 지도자를 배출할 수 없었고, 선교기지식 접근은 자문화 우월주의를 만들게 되었다. 그래서 벤은 선교기지가 선교를 위험에 빠뜨리게 하였다고 강렬히 비판하였다. 벤과 앤더슨은 선교 기지 교회를 반대하며 성경에 소개된 안디옥교회처럼 초기부터 자립하는 토착화 교회를 세울 것을 강력히 호소하였다. 이 정신을 담아 1851년 처음 소개한 것이 자립, 자치, 자전이라는 ‘삼자 원리'이다. 이것은 선교계에서 일대 혁명과도 같았다. 그러나 식민주의 시대 때 서구 선교사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만 삼자 원리가 가능했기 때문에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았다.

2) 목적

  토착화 선교의 첫 번째 목적은 현지인 교회의 자립이다. 선교사의 도움 없이 현지인 스스로 교회를 세우는 독립 교회에 목표를 둔다는 것이다. 벤의 삼자 원리는 경제적으로 열악한 식민지 교회가 과연 재정적으로 독립이 가능할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편안한 삶에 길들여진 서구 선교사들의 반대도 거셌다. 두 번째 목적은 현지인 지도자 위임이다. 독립 교회는 현지인 스스로 자립, 자치, 자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위임이 가능하다. 사실 위임에는 현지인 리더의 영적, 인격적  성숙, 교회 재정, 민족성, 교회 개척 능력, 국가 경제  등과 같은 많은 요소가 포함되기 때문에 식민지 국가인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쉽사리 이뤄지지 않았다. 초기 한국교회는 자립에 있어 성공 신화를 만들었는데 다른 국가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3) 네비우스 전략과의 관계

  미국장로교해외선교회 소속으로 중국에 파송된 존 네비우스는 1854년 중국에 도착하였다. 네비우스는 언어훈련을 마친 뒤 1861년 산둥으로 건너가 2기 사역을 하면서 큰 변화를 일으켰다. 네비우스는 젊었기 때문에 선교 열정은 높았으나 전략이 부족했고 마침 헨리 벤이 발표한 삼자 원리는 그에게 큰 도전을 주었다. 선교사가 아닌 현지인 중심의 교회개척은 그에게 큰 관심을 가져다주었다. 당시 서구 선교사들의 몸에 배었던 현지인을 고용해 사역하는 옛 방법을 버리고 현지인 스스로의 힘으로 교회개척을 하는 새 방법을 시도하였다. 헨리 벤의 삼자 원리를 새롭게 적용한 이 방법은 성과가 매우 좋았고 그는 자신의 사역의 경험담을 1885년 <중국 보고서>에 연재하였다. 이것은 1886년에 <선교 사역 방법>으로 출판되었다가 1889년에 <선교지 교회 개척과 성장>으로 재판되면서 선교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당시 한국에서는 언더우드, 아펜젤러, 펜윅이 사역하고 있었다. 선교 전략이 미약했던 그들은 1890년 네비우스를 한국에 초청하였고, 네비우스는 한국에서 약 2주간 머물면서 9가지 주요 전략을 소개한다. 이는 다음과 같다: (1) 순회 전도 중심의 개인 정도, (2) 자전, (3) 자치, (4) 자립, (5) 조직적인 성경공부, (6) 엄격한 성경 중심 생활, (7) 선교지 분할 정책, (8) 소송 건에 대한 불간섭 원칙, (9) 현지인의 경제 문제를 도우려는 자세  놀라운 사실은 네비우스 선교전략이 한국교회에서 그야말로 성공신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네비우스 전략을 세 가지로 요약하면 성경공부, 자립, 현지인 위임이다. 이는 한국인의 정서에 맞아 성공률이 높았다. 우선 한국인은 유교문화로 인하여 배우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성경공부가 즐거웠고, 성경공부는 사경회로 변화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또한 한국인은 자립성이 매우 강해 ‘자립’은 한국인에게 딱 맞는 전략이었다. 성도들의 힘만으로 건축비 전액을 마련하는 교회들이 생기기도 했다.

4) 왜 토착화는 한국교회에서 성공할 수 있었나?

  토착화가 한국교회에서 가장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로 토착화의 원리인 자립, 자치, 자전은 한국인의 기질과 잘 맞기 때문이었다. 둘째로 한국교회는 네비우스의 영향으로 토착화 신학이 뿌리내리는데 성공했다. 한국교회의 토착화 신학의 예는 새벽예배, 금요철야, 성미제도다. 이 세가지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교회만 볼 수 이이는 고유 신앙 브랜드이다. 새벽예배는 예수께서 ‘새벽'에 한적한 곳으로 기도하시던 모습과 한국인의 성실감이 어우려져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금요철야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와 마가 요한 다락방 기도,  한국인의 열정이 맞물려 만들어지게 되었다. 성미제도 역시 구제와 섬김의 신앙이 들어와 만들어진 한국교회 내의 토착화라 할 수 있다. 셋째로 평신도의 역할이 증대됐기 때문이다. 초기 한국교회에 소개된 네비우스 선교정책은 평신도들의 역할을 증대시키는데 일조하였다. 목회자 중심의 교회가 아닌 평신도가 사역하는 교회를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한 것이다. 당시 한국 여성들은 이슬람 문화권처럼 여성들만의 공간이 있을 만큼 폐쇄된 사회에서 살았지만 복음을 통하여 여성들은 자유, 사랑, 희생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넷째로 성경공부에 관심이 많았다. 네비우스 성경공부는 한국교회에서 사경회로 정착하면서 한국교회를 부흥시키는데 일조하였다. 한국에서 사경회의 열기를 살펴보면 1936년에 사경회가 총 2,344회 실시되었고 참석자 수는 총 17만명이 넘었다. 

5) 토착화에 대한 비평

  토착화 선교는 거의 백 년 동안 반박을 받지 않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기 시작하였다. 토착화를 지적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영국 국교회 선교사와 여러 신학대학 교수들이 있는데 이들의 주장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바울이 세운 교회가 토착화 교회는 맞지만 먼저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임을 지적해 주었다. 그들은 선교는 인간이 아니라 성령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며 우리가 성령을 믿을 때 개종자들에게 성령을 믿도록 가르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힘이 아닌 성령께 의지해서 교회를 세울 것을 강조한 것이다. 둘째로 토착화 교회가 겉보기에는 현지인 중심의 교회로 보이지만 실제로 속을 들여다 보면 ‘꼭두각시' 교회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 말은 토착화 교회가 자립, 자치, 자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선교사의 도움을 받는 교회가 생겨나다보니 현지인 교회는 선교사의 꼭두각시에 불과한 경우가 되는 것이다. 셋째로 토착화 교회가 너무 경제적 자립에만 몰두하다 보니 인간적 교만함이 묻어 있다는 점이다. 토착화 교회는 한국경제 부흥과 맞물려 빛을 발하기도 했지만 성공주의, 번영신학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물질주의에 빠지게 하기도 했다. 넷째로 토착화 교회는 자신이 하는 일, 성취욕에 집중하다보니 ‘개교회 주의'에 빠지기도 했다. 다른 교회와 연합하기 보다는 내 교회, 내 목사에 올인하다 보니 주변 교회들과 협력하는데 취약한 면을 나타내기도 했다. 다섯 째로 토착화 교회는 안디옥교회와 같은 자립교회에 목표를 두다보니 세상의 흐름을 읽고 대응하는 것에 약할 뿐 아니라 사회적 참여가 약했다. 사실 토착화 교회는 복음에 집중해 왔지 상황에 집중해 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197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상황화 선교로부터 집중적인 포화를 맞기 시작했다. 여섯 째로 높은 수준의 신학 교육을 실시하지 못하였고 반지성주의를 낳기도 했다. 이것은 초기 한국교회의 문제이기도 한데 대다수 초기 내한선교사들이 영성훈련과 교회개척에 관심을 두다보니 우수한 신학교육을 시키는 데는 미흡하였다.


2. 상황화 선교

1) 발생

  상황화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제국주의 식민통치가 종식되자 비서구 교회들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서구 신학에 대한 질의와 의심을 가지면서 탄생하게 되었다. 서구 신학은 서구의 역사적, 문화적 상황에서 탄생한 것이지 이것이 마치 정답처럼 비서구 교회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필요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 마치 초대 교회의 히브리파 유대인들처럼 자문화우월주의에 빠져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것을 절대화시키고, 다른 문화에 대해 우월의식을 가진 자세는 서구교회에도 그대로 있었다. 이런 태도로는 비서구권에서 선교를 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1972년 열린 방콕대회에서 신학교육기금 책임자인 신학자 쇼키 코와 부책임자인 아론 삽세지안에 의해 최초로 상황화란 용어가 사용되었다.

  상황화 신학이 발생한 요인은 이렇다. 첫째로 서구의 식민지 정책과 노동착취에 대한 반감 운동이 비서구권을 중심으로 강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기독교라는 이름 아래 저질러진 서구의 만행에 비서구권 국가들은 노골적으로 저항했다. 둘째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 국가들로부터 민족주의가 강하게 일어나면서 서구의 것을 배척하는 운동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동안 식민지 국가로 살아야만 했던 국가들이 언어, 문화, 역사의 교육 및 사회에서 서구의 것을 없애고 자국의 것을 심으려는 운동이 확산된 것이다. 셋째로 냉전시대를 맞이하면서 각 국가별 내전과 종족 간의 전쟁은 선교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이런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야만 했다. 넷째로 서구 신학자들은 서구에서 개발된 보편적 신학이 다른 지역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 거라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음만 고집하는 토착화 보다는 상황도 함께 고려하는 상황화 선교가 주목 받기 시작하였다.

2) 토착화와 차이점

  사실 상황화는 복음에 가깝게 할 것인지 ‘상황'에 가깝게 할 것인지에 따라 그 의미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상황화에 대한 해석 또한 다양하다. 상황화가 문화와 인간이 처한 모든 상황을 고려하며, 특별히 제3세계의 모든 상황을 고려한 신학적 작업이라는 주장도 있고 제3세계에서 세속화, 기술화, 인권 투쟁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러한 것들을 고려한 상황화 신학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토착화와 상황화의 차이점은 첫째로 토착화는 선교사가 현지인 교회를 개척한 뒤 최종 목적을 ‘현지인 지도자 위임'에 두고 있다면 상황화는 현지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모두 고려해 현지인에게 ‘자율성'을 두는데 있다. 둘째로 토착화는 문화적 차원만 고려한다면 상황화는 정치, 사회, 경제까지 고려한 것이다. 셋째로 토착화는 문화를 정적이고 전통적인 것으로만 이해한다면, 상황화는 문화를 변화와 변혁의 대상으로 본다. 넷째로 토착화를 주로 선교지에서 생기는 일로 본다면, 상황화는 서구 사회이든 비서구 사회이든 인간이 만든 제도, 구조, 문화는 악한 것도 있고 선한 것도 있기 때문에 변화와 변혁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고 본다.

3) 상황화의 종류

  상황화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낮은 상황화와 높은 상황화이다. 상황화 작업을 할 때 복음에 가까우면 낮은 상황화이고, 상황에 가까우면 높은 상황화이다. 낮은 상황화는 착한 것이고, 높은 상황화는 나쁜 것은 아니다. 상황화의 판단 기준은 혼합주의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상황화에서 많이 다뤄지고 있는 역동적 등가 번역이란 선교사가 성경을 번역할 때 본래 의미를 유지하기 위해 형식을 바꾸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 18장에서 ‘세리가 가슴을 치며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기도하는데 이것을 한국인이 이해하는데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서부 아프리카에서는 가슴을 치는 것이 ‘난 최고에요'라는 뜻이기 때문에 회개의 의미를 나타내는 ‘자기 머리를 때리다'라고 바꿔 전달해야 소통이 제대로 된다. 이러한 역동적 등가 번역은 낮은 상황화에 해당된다. 둘째로 역동적 등가 교회란 선교사가 주장하는 형식적 일치 교회의 예배당, 예배 순서, 설교 스타일을 버리고 현지인 교회가 자신들의 문화와 세계관에 맞는 교회를 세우는 것을 말한다. 현지인의 문화에 따라 독창적이고 창조성 있게 진행하는 것이다. 설교 스타일에 있어서 한국교회나 서구교회는 ‘강연식'이 잘 어울린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설교는 ‘토크식' 설교가 어울린다. 구전문화권이 많다보니 서로 타원으로 둘러앉아서 얘기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셋째로 역동적 등가 회심이란 현지인의 문화 안에서 적절한 형태로 회심이 이뤄지는 것을 말하는데, 역동적 등가 회심은 높은 상황화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회심이란 일반적으로 개인적 회심을 말하는데 이것이 한국이나 서구사회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족 중심의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개인적 회심이 불가능하다 보니 이들의 상황을 고려한 회심 방법으로 역동적 등가 회심이 등장한 것이다. 때문에 한국사회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개인’보다는 ‘가족'의 결정권이 소중한 무슬림 사회에서 생겨난 회심의 방법도 존재한다.

  복음 중심의 번역모델, 상황 중심의 실천모델, 인류학적 모델, 초월모델 말고도 복음과 상황 모두를 수용하는 종합모델도 있다. 그러나 종합모델의 현지인의 마음을 여는 개방성은 있을지 몰라도 상대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높다.

4) 논쟁거리

  상황화의 논쟁거리는 당연히 혼합주의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혼합주의에 관해 히버트 교수는 선교사가 시도한 ‘형식'이 성경의 본질적 의미를 축소, 왜곡, 변질시켰을 경우를 혼합주의로 보았다. 이 말은 선교사가 시도한 것 중에 이방적인 형식에 이방적인 의미가 그대로 담겨 있다면 이것은 혼합주의이고. 반면에 이방적인 형식은 있지만 이방적인 의미가 제거되었다면 이것은 상황화이다.

  여기서 상황화를 시도할 때 ‘상징 빼앗기'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혼합주의는 아닌데 이교도의 종교적 용어를 폐기하고 낯선 용어를 사용하기 보다는 그들에게 익숙한 종교적 용어를 사용하여 그 의미를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혼합주의를 확인할 때 꼭 필요한 것이 형식과 의미이다. 상황화를 할 때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본질의 의미를 찾아 적용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혼합주의 역시 상황화에 따라 낮은 혼합주의와 높은 혼합주의로 나눠진다. 물론 높은 혼합주의는 복음이 훼손되기 때문에 안 된다.

5) 상황화에 대한 비평

  상황화는 지금까지 많은 영향을 끼쳐왔는데 우선 상황화의 공헌을 살펴보자. 첫째로 현재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영역에서 상황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토착화가 텍스트에만 집중하고 상황을 놓친 것에 대해 대응을 잘 해 왔다. 선교사 문화만 고집하지 않고 현지인 문화를 고려하여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사역의 열매를 거둔 것은 좋은 일이라 할 수 있다. 둘째로 각 지역의 특수한 상황에서 보편적 복음을 이끌어 낸 것이다. 복음은 어떤 지역에서든지 좋은 소식으로 부터 전달되어야 한다. 그래서 상황화는 복음이 현재의 사회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막고, 소통하는 일에 집중해 왔다.  상황화에 대한 비평은 이렇다. 첫째로 지역 신학의 보편성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점이다. 이 말은 한지역의 독특한 상황 속에서 태동한 신학이 마치 보편적인 신학으로 둔갑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둘째로 상황화가 지나치다 보면 상대주의와 절대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높다는 점이다. 현지인의 문화를 너무 배려하다보면 문화상대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고, 또한 자신이 만든 상황화가 모든 지역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절대주의에 빠질 염려도 있다.

6) 상황화 사례

  브라이언 호건이 《퍼스펙티브스 2》에 소개한 스웨덴 선교사 부부의 ‘몽골 상황화 이야기' 이다. 구소련이 붕괴된 이후 몽골은 1992년에 사회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체제 전환을 이루게 되면서 문호가 개방된다. 이때 스웨덴 선교사 부부인 매그너스와 마리아가 입국하였다. 이들은 수도 울란바트로에서 언어 훈련을 마친 뒤 에르테네트로 이주하였고 영어가 가장 우수한 청년 바이야라아가 함께 동행하였다. 놀라운 것은 사역을 시작한지 1년이 조금 지난 시점에 신자수가 120명까지 성장하여 두 명의 젊은 남자와 바이야라아를 ‘임시 장로'로 세우게 되었다. 하지만 몽골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벽에 부딪힌 것은 도시 몽골인이 아닌 ‘게르'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진짜 몽골인'이었다. 복음이 초기에 도시 몽골인들에게는 적합했는지는 몰라도 진짜 몽골인에게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단기 방문 팀이 병자를 위한 기도를 가지면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예수님께서 절름발이와 귀머거리와 벙어리를 치유했던 것처럼 똑같은 기적이 일어났고, 이 일은 순식간에 소문이 퍼져 몽골인들이 사방에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또 한 번의 변화를 겪게 해 주었다. 초기 선교사들이 하나님이란 단어를 우주의 주인을 뜻하는 단어로 소개했는데 몽골인의 귀에는 생소하고 비현실적인 소리로 들렸다. 선교사들은 불교 문화와 혼합주의를 피하려고 한 것인데 오히려 몽골인에게는 이질적인 언어로 들렸다. 그래서 새로운 단어를 고안해냈는데 그 단어는 몽골의 토속적인 냄새가 나서 현지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상황화의 성공이었다. 또한 선교사들은 성경번역만을 상황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역 전반으로 확장시켰고, 현지인들이 리더십을 발휘하도록 도와주었다. 예를 들어 침례는 욕조에서 하였고, 찬송은 외국 것을 사용치 않고 현지화했다. 무엇보다 예배 시간에 드라마와 간증시간을 꼭 집어넣었는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유목민들에게 드라마는 가슴으로 와 닿는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이 진행했던 예배는 지루하고 따분할 때도 있었는데 이제 몽골인들이 직접 예배를 인도하자 활기가 넘쳤고 보다 적극적이었다.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몽골의 옷을 입고 임재하심을 경험하게 되었다.

  스웨덴 선교사 부부가 몽골 선교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상황화를 잘했기 때문이었다. 유대인 신자처럼 자기 것만 고집하지 않고 몽골의 현지 상황을 잘 파악해서 상황화를 시도한것이 성공적이었다. 이런 착한 상황화는 지금도 어디에서나 필요하다.




평신도를 위한 비즈니스 선교


1. 왜 하나님은 한국교회를 비즈니스 선교에 사용 하실까?

  한국 선교사 가운데 21%가 비즈니스 선교를 한다. 이들의 사역분야는 의료, 교육, 식당, 관광가이드,헤어샵 등이다. 한국 선교사가 비즈니스 선교에 동참하는 첫 번째 이유는 한국의 경제력이 크게 성장한 탓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은 IT, 반도체, 자동차, 음악, 스포츠 등의 분야에서 최고이다. 놀라운 한국경제 발전이 선교에도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선교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선교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매우 가난한 나라였지만 서구 선교사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들고 와 희망을 주어 한국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이제는 대한민국은 받은 사랑을 갚을 때이다. 따라서 아직까지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한국교회는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한다. 

  세 번째 이유는 비즈니스 선교사가 교회에 손을 벌리지 않고 자립선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교회는 젊은층의 교회 이탈, 가나안 신자의 증가 등 여러 상황이 썩 좋지 않다. 젊은층의 선교동원도 어렵지만 교회 역시 선교사 파송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하여 주목받는 것이 비즈니스 선교이다. 비즈니스 선교는 선교사 스스로가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교회에 재정적 후원요청을 하지 않는 편이라 요즘처럼 선교동원이 어려울 떄에 비즈니스 선교는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2. 오늘날 비즈니스 선교가 필요한 곳은?

   첫째로 CAN지역이 선교가 필요하다. CAN 지역이란 선교사의 신분으로 들어갈 수 없는 이슬람권과 사회주의권을 말한다. 전세계에서 선교사 입국을 거부하는 CAN 국가가 140국을 넘는다. 이런 곳에는 전통적인 방법으론 선교가 불가능해 창의적인 방법인 비즈니스 선교로 접근해야한다.

  둘째로 10/40 창(window) 지역이다. 10/40이란 북위 10도에서 북위 40도까지와 태평양에서 대서양까지의 직사각형 지역을 말한다. 이 안에 있는 국가들의 공통된 특징을 살펴보면 95%이상이 CAN지역이고 세계 4대종교가 있어 영적 전쟁이 심해 미복음화된 지역이 대다수이고 인권피해가 많은 곳이며 세계 최대의 미전도종족이 집결해 있는 곳이다. 이곳은 선교사 비자로 입국할 수가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비즈니스 선교가 주목을 받는다.


3. 이 시대의 요청, 비즈니스 선교

1) 세계화와 비즈니스 선교

  오늘날 한국교회가 비즈니스 선교에서 빗겨갈 수 없는 이유는 세계화의 덕을 보기 때문이다. 세계화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국가 간 교류가 증대하여 개인과 사회집단이 갈수록 하나의 세계 안에서 영위해 가는 과정을 말한다.

2) 비즈니스 선교 용어를 정확히 알자

  자비량 선교사란 외국에 거주하는 전문직, 의사, 군복무자, 외국 유학생, 유엔 외교관직에 이르기까지 모든 크리스천을 말한다. 이들은 풀타임 전임 사역자가 아니어서 사역보다는 자신의 일에 더 치중하기에 전문인 선교사 혹은 텐트메이커로 불려서는 안 된다.  텐트메이커 선교사란 선교사의 신분으로 들어갈 수 없는 창의적접근지역에 전문인 전임 사역자로 섬기는 자를 말한다. 10/40지역에서 23년간 텐트메이커로 활동한 패트릭 라이의 주장에 따르면 T1은 텐트메이커 선교에 도움을 주는 자이고, T2는 ‘사역'보다는 ‘일'에 더 치중하고, T3은 ‘일'보다는 ‘사역’에 더 치중하고, T4는 비공개 전임교사를 말한다.


4. 비즈니스 선교의 3가지 목표

1) ‘BJC’ 원리

  비즈니스 선교의 3가지 목표는 ‘BJC’ 원리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Benefit(이익 추구), Job(일자리 창출), Church Planting(교회 개척)의 영어 첫글자를 따서 만든 것이다. 문제는 교회개척이다. 비즈니스를 통한 교회 개척에 가장 중요한 것이 일대일 제자 양육이다. 몸이 피곤하고 힘들지만 일대일 제자양육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한다.  비즈니스 선교하기에 좋은 분야는 첫째로 서비스업, 둘째로 건설업, 셋째는 제조업,넷째로 무역업이 있고 비즈니스 선교의 두 가지 모델로 조력형과 참여형이 있다. 조력형은 선교사가 현지인 법인 설립을 간접 지원하는 것이고 참여형은 선교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선교사가 직접 외국인 투자 법인을 설립해 본인이 법인 대표가 되는 것이다.  법인 대표가 되기 위해서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현지인 국적을 취득을 해야하기 때문에 선교사가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2) ‘BJC’ 원리의 실패담을 찾아서

  비즈니스 선교의 성공과 실패는 선교사가 ‘하나님 나라 비즈니스'를 할 것인지, ‘세상적 비즈니스'를 할 것인지에 달려있다. 역린 지역이든 닫힌 지역이든 마찬가지로 ‘BJC’ 원리를 실천하고자 하면 성공할 수 있다. 누구나 돈 앞에서는 약하기 때문에 비즈니스 선교사는 B(이익 추구)와 J(일거리 창출)가 어렵지만 C(교회 개척)가 더욱 어려운 것이다.


5. 비즈니스 선교가 성공하려면?

  비즈니스 선교에 성공하려면 우선 선교사의 자질이 중요하다. 첫째로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선교사로 파송받기 전 풍부한 경험이 있어야 선교지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로 비즈니스 영성이 있어야 한다. 비즈니스 영성이란 모든 사업을 할 때 성경적인 원리와 양심에 따라 경영하는 것이다. 셋째로 통전적 전략이 있어야 한다. 비즈니스 선교사가 전방개척지역에서 문화명령과 영적명령을 함께 이루고자 하는 통전적 전략이 분명해야 성공할 수 있다.

  비즈니스 선교의 이점 첫째는 비자를 해결할 수 있다. 비즈니스 선교사는 개인이 조력형 모델을 하든 참여형 모델을 하든 비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점이 크다. 둘째는 현지인 사역자에게 자립 생활의 터전을 만들어 줄 수 있다. 셋째로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변화를 추구할 수 있다. 비즈니스 선교사가 하나님 나라 경영을 하게 될 때 다양한 방면에서 사회변화를 이끌 수 있어서 비즈니스 선교는 영적 변화 뿐 아니라 문화 변혁도 실시해야 성공 할 수 있다.

  비즈니스 선교를 하게 되면 여러 가지 장애물을 만나게 되는데 이를 지혜롭게 극복해야 성공 할 수 있다. 선교사들이 종종 만나는 장애물은 첫째로 현지 관료가 터무니없는 많은 뇌물을 요구할 때 뇌물을 줘야 할 것인지 말아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둘째로 비즈니스를 하는 상대방으로부터 소송을 당했을 때 상대방은 판사를 돈으로 매수해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선교사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셋째로 세관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물건을 통과시키지 않아 막대한 손실을 본다. 넷째로 현지인을 고용했는데 일을 잘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지 않는다. 이처럼 비즈니스 선교는 그 자체가 영적전쟁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6. 비즈니스 선교의 성경적, 역사적 사례

1) 성경적 사례

  첫째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이다. 이들은 장막 짓는 자로 스스로 생활비를 벌면서 교회개척도 하였다. 아굴라는 로마군이 들이 타고 다니는 말의 안장이나 허리띠를 가죽으로 만드는 비즈니스맨이었다보니 이들 부부는 군인들이 이동하는 지역으로 함께 이동하면서 비즈니스를 펼쳐갔다. 이들은 사업에만 그치지 않고 아볼로를 말씀 가운데 일깨워 훌륭한 복음 전도가로 돕기도 하였다. 나이가 자신들이 머문 곳의 집에 가정교회를 세움으로 하나님 나라 사업을 잘 하였다. 둘째로 루디아다. 루디아는 자신이 태어난 곳인 의류 제조업의 중심지의 두아디라 지역에서 옷감 장사로 큰돈을 벌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신앙에 민감한 자였다. 그녀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빌립보로 갔다가 바울을 만나면서 인생이 확 바뀌었다. 바울이 전한 메시지가 그녀를 회심시켜 곧 바로 자신의 집을 가정교회로 오픈하였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루디아는 평신도 사역자로 ‘BJC’ 원리를 실천한 자다.

2) 역사적 사례

  첫째로 모라비안 교도이다. 진젠도르프가 헤른후트에 세운 모라비안 교회는 1732년에 첫 첫 선교사 두 명을 서인도 제도의 버진 열도에 파송하면서 평신도 비즈니스 선교시대를 열었다. 진젠도르프는 선교초기에는 후원금을 지원했지만 나중에는 자립선교인 비즈니스 선교로 전환했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다. 둘째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이다. 동인도회사는 인도네시아에서의 교역이 활발하였다. 동인도회사는 향로 무역을 통해 유럽에서 많은 수익을 올렸지만 사업에만 그치지 않고 교회를 세우기도 했다. 셋째로 바젤 선교회다. 바젤선교회는 스위스에서 설립된 이후 주로 인도와 가나에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이들은 이곳에서 목공, 편자, 커피 등 여러가지 사업가로 들어가 무역과 사업을 하면서도 교회개척을 놓치지 않았다. 바젤 선교사들은 세계 어느 곳이든지 하나님 나라의 경영으로 영향력을 끼쳤다. 이들은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선교의 일환으로 생각하였고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성품, 성실 검소, 정직, 믿음, 관용 등을 몸으로 직접 보여 주었다.


7. 비즈니스 선교의 자세, 성경적 세계관을 회복하라

  비즈니스 선교의 성패는 선교사가 성경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느냐에 달렸다. 돈과 세상을 사랑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선교사가 먼저 성경적 세계관 위에 서 있어야 한다. 성경적 세계관이란 ‘신앙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비즈니스에서는 돈이 오가고 이윤을 남겨야 하여 신앙과 삶이 일치한 모습을 보여 주기가 무척 힘들다. 비즈니스 선교사가 성경적 세계관 토양 위에 서 있다면 바로 그곳에 하나님 나라의 경영이 임하는 것이다.

  헬라적(세속적) 세계관은 버려야한다. 헬라적 세계관이란 영의 세계에는 거룩하지만 반면에 물질세계에서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신앙과 삶이 따로 노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주일날 교회를 갈 때는 거룩하지만 평소에는 전혀 다른 세상적 모습이 드러난다면 바로 헬라적 세계관을 지닌 자이다. 보통 세상 사람들은 헬라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고 영의 세계에서는 거룩한 삶을 산다고 하지만 막상 세상살이에서는 남을 속이고, 헐뜯고, 무너뜨리고 파괴시켜 자신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비난받는 것은 신자들에게 성경적 세계관이 사라져서 그렇다.

  사업을 하는 선교사가 자신의 영성과 삶이 따로 노는 이원론적 신앙이라면 100% 실패할 수밖에 없다. 비즈니스 선교사는 자신의 영성에 문제가 있다면 1차적으로 신앙을 100% 성령의 사람으로 재건축한 다음 선교지로 떠나야 한다.


8. 비즈니스 선교의 10가지 효과

  하나님은 분명히 비즈니스를 통해서 역사하신다. 비즈니스 선교의 10가지 효과를 보면 첫째로 복음의 문이 닫힌 나라를 여는 열쇠가 된다. 둘째로 비즈니스 선교는 일거리를 창출한다. 셋째로 비즈니스 선교는 지역 경제를 살리고 그 나라를 축복한다. 넷째로 비즈니스 선교는 방대한 부가 가치의 위력과 함께 선교인력을 창출한다. 다섯째로 비즈니스 선교는 현지인 교회가 자립 할 수 있게 한다. 여섯째로 비즈니스 선교는 교회에 잠재되어 있는 고급 인력 평신도를 선교에 동원케 한다. 일곱째로 비즈니스 선교는 전통적 선교의 유익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여덟째로 비즈니스 선교는 전통적 선교의 유익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아홉째로 비즈니스 선교는 디아스포라 선교에도 큰 유익함을 가져다준다. 열째로 비즈니스 선교는 이슬람권과 사회주의권 사역에 좋다. 이처럼 비즈니스 선교는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경영'을 실천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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