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교육
100,000,000,000 (입시시장의 규모, 약 1000억 원)
49.4% (2021년 기준으로 2명 중 1명이 재수생)
6257(2019년 기준으로 교육 이민을 가는 사람 수, 가는 이유: 매달 수백만 원씩 학원비를 쏟아부어야 하는 한국의 교육환경 때문에 국제학교 아니면 이민을 떠나는 이들이 많다. 그리고 경쟁이 일상화된 사회 분위기, 지긋지긋한 이념, 세대, 남녀 간 갈등도 무시 못 할 이유이다.)
1,000,000 (2019년 기준 청년실직자 명수)
37/35 (2021년 기준 한국의 행복순위)
위 숫자들은 한국 교육의 심각성을 알려주는 숫자이다. 맨 위는 입시 시장의 규모로 약 1000억 원 정도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2021년 기준 재수생의 비율을 나타낸다. 세 번째는 2019년 기준으로 교육 이민을 가는 이들의 숫자이다. 매달 수백만 원씩 쏟아부어야 하는 한국의 교육환경 때문에 교육 이민을 가서 아이를 다른 나라에서 교육받도록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이 교육 이민을 가는 이유는 경쟁이 일상화된 사회 분위기도 만만치 않은 비율을 차지한다고 한다. 맨 마지막은 2019년 기준 청년실직자 명수로 약 100만 명이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 입시시장, 그리고 재수를 하면서까지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는데, 결국 취업을 하는 이들은 매우 적다. 맨 마지막은 우리나라의 행복순위이다. 37개의 OECD 국가 중 우리나라의 행복순위는 35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행복순위는 지금 우리의 교육이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이제 좋은 교육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좋은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나는 크게 5가지를 좋은 교육의 핵심으로 꼽았다. 먼저 첫 번째로 좋은 교육이란 '나'를 찾을 수 있어야 하며, 두 번째는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세 번째는 올바른 관점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네 번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깨닫고 공동체 안에서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 먼저 첫 번째로 좋은 교육이란 ‘나'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교육에 대해 알아보자. 좋은 교육이란 나를 찾도록 하는 교육이다. 그래서 우리는 교육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에 대한 것들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많은 학교에서 진로에 대한 수업이나 박람회 등을 열어 학생들에게 자신의 진로를 찾을 수 있게끔 하지만 많은 청소년들은 자신에 대한 것을 알지 못한 채 성인이 된다. 하지만 사회는 내가 그런 것을 생각할 수 있도록 여유를 주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는 청소년 때에 나에 대한 것들을 확실히 하고 세상을 살아나가야 한다. 나를 찾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두 가지는 바로 쉼과 영성 있는 교육이다.
먼저 쉼의 교육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많은 사람에게 ‘쉼’이라는 단어는 행복한 상상을 하게 한다. 누군가에게는 그 쉼이 잠을 자는 것일 수도, 음악을 듣는 것일 수도, 드라마를 보는 것일 수도, 여행을 떠나는 것일 수도 있다. 쉼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수 요소이다. 쉼을 통해 우리는 재충전하고 일어날 힘을 얻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쉼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바꾸는 결정을 내리긴 쉽지 않다.
그런데 여기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한 학교가 있다. 그 학교는 바로 전 세계 행복 1위인 덴마크에 위치한 에프터스콜레이다. 그곳에서는 쉼을 단지 재충전하고 다시 일어날 힘을 주는 것뿐만이 아닌 쉼이 삶을 위한 교육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곳에서는 각자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약 1년 동안 찾고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육을 한다. 때문에 어떤 특정 과목이나 교실에 매여있지 않으며 여러 가지 것들을 경험해보고 접해보면서 진지하게 자신의 방향을 설정해보는 시간을 가진다. 또한 대부분의 에프터스콜레가 기숙학교로 운영되고 있어 생활교육을 기본으로 하며, 덴마크의 공동체성과 민주 시민의식 기르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자신이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이 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숙사 한 방에 함께 지내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쉼을 삶을 위한 교육이라고 부른다.
삶의 많은 길목에서 자신의 방향을 정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는 것은 아이들에게 있어 꼭 필요한 과정이다. 자신의 방향에 대한 회의감이나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 아이들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우리는 천천히 그리고 많이 경험해보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전반적인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결정이라면 더욱더 많은 시간과 경험들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쉼의 교육은 항상 자신의 방향을 가늠할 수 없이 시간에 쫓기는 현대의 중고등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이다.
학생들이 자신을 찾도록 돕기 위해서는 영성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대안교육학회 창립준비세미나에서는 영성 있는 교육을 이와 같이 정의했다.
“영성 있는 교육이란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대한 근원적 질문들이나 우리가 경험하는 물리적 세계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세계와 초월자에 대한 질문들을 탐구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크게, 아주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물질적인 세계를 바라보는 눈과 물질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다. 우리는 물질 너머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이라는 존재에 대해 인식했을 때, 우리는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넘어서 전인격 존재로서 나와 상대방의 관계가 형성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다른 사람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면서 나와 타인을 이해하고 그렇게 우리가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경험하며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성 교육은 종교성을 배제한다고 하는 공교육의 특성상 교과 안에 접목될 수 없다. 때문에 쉼과 영성 있는 교육은 기독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했을 때 진정으로 실천될 수 있을 것이다.
쉼의 교육이 공교육에서 실행한다고 생각해보자. 우리에게는 그저 대입 입시를 준비할 시간이 1년이 느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경쟁 심화의 문제로 연결될 것이다. 또한 영성 있는 교육은 ‘나’를 가르치지 않는 공교육에서는 실행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 모든 교육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기독교 교육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 기독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
두 번째로 좋은 교육이란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부분의 이들은 '교육'이라는 말을 들으면 입시, 경쟁, 딱딱한 교실 등의 단어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실제로 우리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학교에서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은 그저 앉아서 선생님께서 알려주는 것을 적는 것 밖에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수업 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학생들은 몇 되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 형성된 교사와 제자의 사이, 처음 시작된 교육은 이런 방식이 아니었다.
맨 처음의 교육은 제자가 자신에게 필요한 배움을 받기 위해 스승을 스스로 찾아갔으며 스승이 이를 수락하면서 제자와 스승의 관계와 교육이 시작되었다. 제자가 스승을 택하는 것은 스승에 대한 신뢰 관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는 두터운 신뢰 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제자는 자신이 원해서 배움을 시작했기에 열정적으로 임하였기에 많은 배움이 있었다. 그런데 현재 학생들은 자신의 원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 즉, 우리가 스스로 배움을 결정하지 못한다. 우리는 학교에서 교육을 통해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스스로 공부하여 자발적인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현재 재학 중인 고등학교에서는 '창의활동'이라는 수업이 있다. 이 수업은 학생이 스스로 수업을 개설하여 운영하며 한 학기 동안 자신을 위한 공부나 활동을 하는 수업이다. 이 수업은 아이들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을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배움이기에 적극적으로 배움에 참여한다. 이처럼 학생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 수업이나 다른 프로그램들을 통해 학생들이 지속해서 자기 스스로 뭔가를 해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세 번째로 좋은 교육이란 올바른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말한다. 관점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말한다. 올바른 관점을 가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 관점이 생기기 위해서는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 그중에서 나만의 관점을 찾아가야 한다.
네 번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기 위해서는 실패는 단지 하나의 경험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과 자신의 경험으로 그것을 경험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공동체란 무엇일까? 공동체라는 말은 현대사회의 대부분의 대학, 기업들이 외치고 있는 단어이다. 공동체라는 말이 그 진가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 단어가 빛나도록 해주는 것들을 적어볼 필요가 있다. 이 단어는 같은 세계관과 정신을 받아들이겠다 약속한 사람들이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남을 위하는 곳, 함께 기뻐하고 슬퍼해 주는 공동체, 자신을 드러내도 불안하지 않은 곳에서 진정한 공동체라는 의미가 빛난다. 때문에 공동체란 관계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으로 만으로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우리 학교의 선생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공동체란 그저 관계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야. 누군가가 떠날 때 슬퍼하고, 잘못된 것에 분노하고, 기뻐 찬양하는 것은 진정한 공동체가 아니어도 다 할 수 있는 것들이야.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교육의 방향은 우리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는 그 기준을, 기뻐하는 대상을 공유하고 함께 추구하면서 이루어지는 거야. 같은 진리를 공유하고, 그것에 대해 토론하고 그에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떨어져 있어도 공동체인 것이고, 그것이 진정한 공동체인 것이지. ”
공동체란 친한 관계인 아이들끼리의 모임이 아니라 같은 가치를 중심으로 모인 이들을 말한다. 이렇듯 우리는 같은 가치로 모인 아이들과 함께 도전하고 실패도 경험했을 때 우리는 도전을 두려워함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공동체를 통해 도전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것은 나의 다섯 번째 교육목표이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교육이란 공동체의 중요성을 깨닫고 공동체 안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공동체 안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성장해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이상 내가 생각하는 좋은 교육에 대해 글을 마치겠다.
오연호 대표와의 만남
나는 오연호 대표님과의 만남이 있었던 날 면접 때문에 대표님을 뵙지 못했다. 때문에 나는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읽고 느낌 점을 중심으로 작성했다는 것을 양해해주길 바란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라는 책은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고 느꼈다. '행복할 수 있을까?' 라는 문장은 우리가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도발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마지막 이 책을 덮었을 때는 제목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제목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책은 당시 OECD 국가 중 행복순위 1위였던 덴마크의 역사와 그들의 행복비결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이들의 행복사회는 국민들이 스스로 나라의 심각성을 깨닫고 나라를 개혁하려 하는 과정에서 교육을 통해 깨어있는 농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고 더불어 살아감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덴마크의 세금은 무자비할 정도로 많지만 이들이 반대하지 않는 이유는 이들은 덴마크 개혁 당시 그룬투비의 학생이었으며 협동조합의 학생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지울 수 없었다. 덴마크는 농촌에 있는 농민들로 인해 변화되었다. 이들은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외치며 덴마크를 변화시켰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농촌의 모습은 어떠한가? 현재 우리나라의 농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서울로 상경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을 한다. 하지만 도시화로 인해 도시로 상경했던 이들이 다시 농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 그런데 사람들은 농촌으로 들어가는 순간 자신의 미래는 마치 결정된 듯 좌절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것이 우리 농촌의 현실이다. 우리는 농촌사회를 어떻게 일으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저 변화되고 있는 곳에서 가서 변화를 경험할 뿐이었다. 그런 우리에게 이 책은 아래로부터의 개혁, 뿌린대로 거둔다의 진정한 의미를 말해주는 책이다.